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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itic & review

《마더링 플루이드》 리뷰 : 결코 아름답지 않은 엄마됨 — 바타유의 저급물질과 크리스테바의 아브젝시옹을 중심으로

by 구정은 2026. 4. 28.

구정은

 

* 본 리뷰는 안티소셜(  )클럽 월간반항행동 4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마더링 플루이드》 리뷰 : 결코 아름답지 않은 엄마됨 — 바타유의 저급물질과 크리스테바의

구정은 《마더링 플루이드》는 지난 3월 29일까지 아마도예술공간에서 진행된 아마도전시기획상 선정 전시다. 전시장 외부에 설치된 엮인 분홍빛 구는 그 자체로 전시를 상징하는 시각적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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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링 플루이드》는 지난 3월 29일까지 아마도예술공간에서 진행된 아마도전시기획상 선정 전시다. 전시장 외부에 설치된 엮인 분홍빛 구는 그 자체로 전시를 상징하는 시각적 표지로 기능한다. 촘촘히 엮인 구는 햇빛을 통과하며 내부를 드러내고, 마치 장기 속을 들여다보는 듯한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바로 옆에 놓인 《구멍의 집》 역시 내부의 엇갈린 스트로우 조각들을 통해 인체 내부를 연상시킨다. 작가는 가장 단순한 조형 언어로 신체를 표현한다. 구와 스트로우에서 공통적으로 연상되는 ‘구멍’은 엄마의 몸이 통과해온 시간의 흔적이자 지속되는 관계와 통과의 조건이다. 최성임의 작업에 있어 엮임과 통과는 일시적이지 않으며, 여성적 순환의 일환이 된다. 엄마됨은 단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 반복되는 관계인 것이다.

 

처음부터 순환의 구조를 전면적으로 내세우는 《마더링 플루이드》는 엄마됨을 고정적 정체성이 아닌 유동적 방식으로서 이해한다. 사회가 강요해온 가부장적이고 고정된 모성 개념에서 벗어나, 잉태와 출산, 양육을 견뎌내는 신체의 방식에 주목한다. ‘누락된 엄마됨’이란 무엇인가. 모성에 관해 말할 수 있는 주체는 사실상 당사자로 한정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엄마됨은 당사자가 아닌 이들에 의해 숭고한 희생과 아름다운 헌신의 서사로 정의되었다. 남성중심주의와 가부장제의 시선 속에서 이상화 된 ‘엄마상’은 여성에게 자기검열과 자기희생을 강요하는 방식으로 작동해온 것이다.

 

그러나 여성의 몸으로 느끼는 엄마됨은 이상만큼 숭고하지 않다. 이는 신체의 발산과 누출, 그리고 바타유가 말한 ‘저급함’의 차원과 맞닿아 있다. 출산은 탄생의 축복 이상으로, 여과 없이 쏟아져 나오는 방출의 과정이다. 바타유의 저급유물론이 말하는 ‘저급”’은 질적으로 저급한 것이 아니라, 기존의 위계적 질서를 무너뜨리는 혼종적 사유의 장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엄마됨은 추한 것이 아니라, 출산을 둘러싼 관념적 위계에 대한 해체의 시도로서 이해된다. 결국 누락된 엄마됨의 본질은 탄생의 기쁨과 동시에 배설의 감각이 뒤섞인 혼종적 경험으로 복원하는 것이다.

 

이처럼 엄마됨의 경험은 미디어가 재생산해온 아름다운 모성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출산과 양육의 과정은 그 자체로 아브젝시옹(abjection)션이 된다. 바타유가 모성을 고상한 상징의 차원에서 저급 물질의 차원으로 끌어내렸다면, 크리스테바의 아브젝시옹 개념은 이 저급 물질이 왜 이상적 재현을 해체하는 수단이 되는지에 주목한다. 아브젝시옹은 주체의 불안정성을 드러내는지를 설명해줄 수 있다.

크리스테바가 말하는 아브젝트는 주체가 자기 경계를 유지하기 위해 밀어내야 하는 모호하고 복합적인 존재다. 따라서 엄마가 된다는 사실 자체가 곧 아브젝트라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출산과 양육의 과정은 나와 타자의 경계를 끊임없이 흔들며 아브젝시옹의 순간을 발생시킨다. 출산 과정에서 흘러나오는 피와 체액은 몸의 내부가 외부로 발산되는 아브젝시옹의 현전이자 한때 내 몸의 내부를 공유하던 존재가 독립된 타자로 출현하는 순간의 증명이다. 사회는 불안정성을 ‘엄마’라는 안정된 역할과 이미지로 봉합하려 하지만, 마더링은 출산으로 끝나는 단발적 사건이 아니라 육아의 시간 속에서 지속되는 과정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로지 기븐스의 《파라바이오시스》(2024)는 임신과 출산이 야기하는 아브젝시옹의 순간을 직관적으로 드러낸다. 태아는 보호의 대상이자 자원을 공유하는 혼종적 타자이며, 이를 품은 엄마의 몸은 더 이상 이전의 독립적 주체로 돌아갈 수 없다. 작가는 임신한 몸을 혼종적이고 정치적인 상태로 제시하며, 출산의 숭고한 상투적 이미지를 무너뜨린다.

한편 윤향로의 《결로》는 이러한 불안정성이 단지 붕괴로만 귀결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임신과 출산을 거친 몸은 이전의 독립적 자아로 되돌아가는 대신, 아이와 출산 이후의 자신이라는 새로운 타자들을 함께 감각하게 된다. 《결로》는 빛이 스쳤다 사라지는 가변적 표면과 중첩된 레이어를 통해, 아이와 함께 통과한 마더링의 시간을 감각적으로 드러낸다. 여기서 마더링은 단순한 감정이나 서사가 아니라, 타자와의 교류 속에서 끊임없이 변형되는 시간의 층위로 나타난다.

 

마더링은 출산이라는 단발적 사건으로 정의되지 않으며, 끊임없이 재조정되는 유동적 상태다. 내가 잉태한 타자, 그리고 출산 경험 전후로 분열된 각 타자가 아브젝시옹의 과정 속에서 지속적으로 파생될 때, 마더링의 의미는 더욱 유동적인 상태로 진화할 것이다. 마더링의 본질은 타자와의 연결이다. 여성이 출산 과정에서 겪는 모성의 발산이 물리적 차원에서 이루어진다면, 관념적 차원에서 마더링은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돌봄과 연결의 감각으로 확장된다. 아이는 엄마의 몸으로부터 분리되어 타자로 호출되지만, 그 관계는 출산으로 끝나지 않고 이후의 돌봄 속에서 지속적으로 재구성된다. 결국 《마더링 플루이드》는 이러한 마더링의 복합적 층위를 드러낸다. 엄마됨은 더 이상 숭고한 이상향이 아니라,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재조정되는 유동적 상태인 것이다.

 

 

 


[1] 《마더링 플루이드》 서문, 아마도예술공간.

[2] Georges Bataille, Base Materialism and Gnosticism (from Visions of Excess: Selected Writings, 1927–1939)

[3] 《마더링 플루이드》 캡션, 아마도예술공간.

 

최성임,〈아주 오래된 나무〉, 2026, 철제 프레임, 스테인리스 스틸, 플라스틱 볼, PE망, 가변 크기